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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e

열정으로서의 사랑


 때로 어떤 상황들은 그 스스로 의미를 띄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의 마음이나 의식과는 관계없이. 가령 사태를 이루는 상황상태는 공포를 주거나 희망을 준다. 문제는 둘 중, 아니, 그 외의 여러 다난한 의미를 띌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타인의 의식세계에 어떻게든 꼬여서 들어간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사랑]는/은, 사태를ㅡ상황사태와는 별개로ㅡ구성하는 일원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적절한 환상을 갖는데 성공했을 때, 혹은 서로가 갖는 환상이 교차하며 직조될 때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을 니클라스 루만은 다음과 같이 좀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파트너의 특이한 선택들을 확증해야만 하는 사랑하는 자는 하나의 선택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행위를 해야 한다. 반면 사랑받는 자는 그저 체험했을 뿐이며 자신의 체험과 [자신이] 동일시되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한쪽은 몰입해 있어야 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신의 세계 설계에 항상 이미 묶여 있기 때문에) 투사 했을 뿐이다. 그래서 타아(사랑받는 자)로부터 자아(사랑하는 자)로 선택성을 옮겨놓은 정보의 흐름은 체험을 행위로 옮겨놓는다. 사랑의 특수함(비극이라고 불러도 된다)이란 이러한 비대칭성 속에, 즉 체험에 행위로 답해야 하고 이미 묶여 있는 존재에게 스스로를 묶음으로써 답해야 하는 필연성 속에 있다.

 

  니클라스 루만, 『열정으로서의 사랑』